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12

辦懍(橠鬾) 歎衛翮(撦蒢眴)’
울화를 삭이는 치심양생책(治心養生策)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근년에 포항의 향토사학자가 발굴한 『우암선생적거기(尤庵先生謫居記)』(우암적거기로 약칭)를 얻어 보니,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유배되어 지내던 기간, 평소 생활의 면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었다.
“뜰 앞에 조그만 채마밭(小圃)을 만들어 놓고 한가로운 틈을 타서 소일할 때, 밭에다 삽(杖鍤)으로 모종을 하고(蒔草) 생강을 심어 술을 마실 때와 평소에도 아침저녁으로 생강과 잣을 빠트리지 않고 드셨다.”
이러한 모습은 선비로서 양민처럼 힘들고 거친 밭일을 몸소 실천궁행하였다는 말이지만 무엇보다도 평소 건강관리를 위해 직접 농사일로 체력을 다지는 한편 생강과 잣을 비롯한 주요 식용자원을 생산하여 일용할 찬거리를 직접 마련했을 뿐 만 아니라 노인건강에 유익한 식이양생 방안으로 소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암 송시열, 양생법으로 초수(椒水)를 만들어 음용

여기에서 등장하는 생강은 한의학적으로 온중비위(溫中脾胃)하는 효능을 가진 채소 중의 으뜸이자 대추와 함께 탕약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첨가재로 사용된다. 생강은 온중화위하고 거담지구하는 효능이 뛰어나기에 거의 대부분의 탕제에 투입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우암은 학동들의 자학입문서인 『천자문』에도 채소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생강(‘菜重芥薑’)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었을 터이다. 이와 더불어 공자가 평생 익힌 생강을 매 끼니 빠트리지 않고 드셨다는 기록을 통해 전통양생법을 체득하였고 평소 자신도 적극 실천하였던 것이다.
또 잣도 노인 건강에 매우 유익한 여러 가지 효능을 갖고 있다. 윤폐지해(潤肺止咳) 즉, 기관지 평활근의 점막에 점액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기관지 해수, 천식증에 좋은 효과를 보이며, 또 노인에게 잦은 허약성 변비에 윤장통변(潤腸通便)하는 효능이 뛰어나 약을 먹지 않고서도 장운동이 부족한 노인성 대장증후나 장애를 개선시킬 수 있는 식치법(食治法)으로 권장할 만하다.
더 나아가 우암은 평소 밭두둑에 나가 앉아있더라도 결코 끼니를 거르는 법이 없었으며, 행단(杏壇)을 쌓아놓고 그 아래 우물을 파서 금붕어를 길렀다고 한다. 또한 집 뒤쪽에 물을 길어먹는 우물이 있었는데, 항상 산초(山椒) 열매와 줄기를 우물 속에 담가 넣었다고 한다. 여기서 몇 가지 특이한 양생법을 볼 수 있다. 일단 때맞춰 거르지 않는 식사법이 절도에 맞는 평소 양생법이란 것을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행단을 쌓고 연못을 파서 금붕어를 기르는 일은 단지 자신과 가솔을 위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잘 알다시피 행단은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친 데서 연유한 것으로 유배객이 머무는 적소에서도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육적 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그는 향촌 선비인 오도전의 집에 머물면서 인근에서 모여든 제자 여럿을 길러냈다. 금붕어를 기르는 일(양어요법養魚療法)은 매우 특이한 취미라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여가 생활의 일환이자 울화를 풀어내기 위한 특이요법의 하나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더욱 적극적인 양생법은 초수(椒水)를 만들어 음용했다는 점이다. 산초는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남방지역에서만 자생하는 토산종이어서 약재로 쓰였던 천초(川椒) 혹은 호초(胡椒)가 수입산 당재(唐材)로 매우 고가였던 것에 비해 야산에서 직접 채취할 수 있어 손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초(椒)는 강한 향과 신랄한 맛을 갖고 있으며, 방부, 해독하는 효과가 있고 소화력을 증진시키므로 해안가에 정배된 외지인에게 물갈이나 배탈, 설사를 예방하는 좋은 치료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단지 음식에 양념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아예 우물물에 풀어 오염된 수질을 개선하고 수인성 질환을 예방하는 방책으로 응용했던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 주변에 자생하는 초목에 대한 자연과학적 접근과 약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의약경험 지식이 없이는 실생활에 적용하기 어려운 사례라 할 수 있다.

울타리 안 배회는 ‘기울체증’ 특이치료법

더욱 흥미로운 것은 거처하는 집, 방문의 창 밖에 벌통을 설치하고 벌을 길렀다는 것이다. 양봉(養蜂), 다시 말해 직접 벌치기에 매달렸다는 것인데, 아침, 저녁으로 거르지 않고 몸소 들여다보았다는 것이다. 양봉은 양어와는 좀 다른 의미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양어가 마음수양의 한 방편으로 적용되었다면 양봉은 육신을 봉양하는 적극적인 방책이 된다. 방문 앞에 벌통을 설치하여 한시라도 벌집의 상태에 문제가 없는지 지켜보고자 했던 것이다.
봉밀 혹은 백밀은 가장 훌륭한 감미료이자 식품이며,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뛰어난 효능을 지닌 약재이다. 백밀의 약성은 『동의보감』에서 성질이 평탄하고 맛이 달다고 하였으며, 그 효능과 주치증에 대해 『동의보감』 탕액편에서는 “安五藏, 益氣補中, 止痛解毒, 除衆病, 和百藥, 養脾氣, 止腸澼, 療口瘡, 明耳目.”한다고 했으니 70세 고령의 유배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요긴한 식자재이자 적용대상이 넓은 상비약으로 쓰였을 것이다.
또한 우암은 친히 밭을 일구고 붕어와 벌을 키우는 것 이외에도 저녁나절 뜰 안을 걸으며 산책하였다고 한다. 좁디좁은 유배지 거처에서 멀리 나갈 수 없었기에 답답한 일이었지만 달뜨는 저녁이면 마당을 거닐면서도 가시 울타리에서 단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평소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울타리 안쪽을 자주 배회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동은 단지 출입이 제한된 상황에서 나오는 이상 현상이 아니라 기울체증에 행동요법으로 적용되는 특이치료법이다.

천천히 음식을 먹는 게 고기를 먹는 것보다 낫다

『동의보감』 내경편 기문에는 ‘기일즉체(氣逸則滯)’라는 항목이 기재되어 있는데, 신분이 고귀한 사람은 힘써 일하는 법이 없고 움직이질 않아 배불리 먹고 누워만 있어 경락이 통하질 않고 혈맥이 응체되어 몸이 무겁고 하루 종일 찌뿌둥하게 지내는데, 겉모습은 좋아 보이지만 마음이 늘 괴로워하는 까닭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러한 증상에 대해 가장 좋은 간이치료법으로 산책을 권장하고 있다. 우암의 이러한 행적은 『동의보감』에서 얻은 의약지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우암의 양생관을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예화가 있다. 우암이 처음 장기에 들어온 지 4년여 만에 다시 떠날 때까지 우암의 문하에 드나들면서 친밀하게 지냈다는 선비 서유원에게 작별의 선물로 써 주었다는 휘호를 보면, 평소 우암의 양생관을 적실하게 살펴볼 수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걷는 것이 수레를 타는 것보다 낫고, 천천히 음식을 먹는 것이 고기를 먹는 것보다 나으며,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요, 이득을 구하는 것은 도리어 해가 되는 것이다.”(安步當車, 晩食當肉, 爲善最樂, 求利反害.)
학식의 연마를 통해 입신양명을 꿈꾸는 것이 세속적인 선비의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자타가 공인했을 우암의 금언은 지극히 소박한 것이며, 막연한 금욕적 절제와 권선징악을 외치기보다는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양생명(養生銘)을 건네줌으로써 향후에 닥칠 심신의 동요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방책을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가다듬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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