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의 위기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차(車)를 좋아하고 차(茶)도 좋아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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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찻잎의 환상적인 방향(芳香)을 만나는 기대감이 커지는 바야흐로 ‘春三月’이다. 하지만 남녘의 차농가들은 근래 한국차의 소비가 급격히 줄어 한국차가 쇠망의 위기에 처했다며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차의 위기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한국차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존의 커피시장에 중국 보이차의 공세까지 더해진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특히 보이차 효능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은 국내 보이차의 과소비 현상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차의 소비가 급격히 줄어드는 최근의 추세는 한의학, 한식, 한복, 한지, 국악 등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력(文化力)이 통째로 약해지는 것 같은 안타까움마저 들어서 한의사의 애정을 듬뿍 담아 한국차에 대한 글을 한 번 써 보고 싶어서 펜들 들었다.
차는 원래 약용 또는 건강지킴이 용도로 마시다가 기호식품 겸용으로 음용하게 되었으며 차의 본래성을 오래 잘 보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다(製茶)가 창안되었다. 이런 음용목적용 제다 방법과 차 종류가 바로 증제 녹차(crispy green tea) 류이다.
당대(唐代) 육우(陸羽, 733년~ 804)가 쓴 『다경』에서부터 명대(明代)에 덖음 녹차(散茶)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 그리고 요즘의 장흥 청태전(靑苔錢)에 이르기까지 덩이차류 또는 떡차류는 원래 증제 녹차(crispy green tea)였다. 그것이 장기간 보존 과정에서 산화 및 발효 작용이 더해져서 황차류 또는 흑차류 및 보이차류로 발전되고, 혹은 생 찻잎 상태에서 부수적 원인으로 인해 백차류와 홍차류가 우연히 또는 의도적 결과로써 출현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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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킨, 테아닌, 카페인은 차의 3대 성분

차에는 카테킨(catechin), 테아닌(theanine), 카페인(caffeine)의 3대 성분이 있다. 이들 셋이 적절한 길항, 보완, 견제 작용을 함으로써 떫은 맛, 감칠 맛, 쓴 맛 등의 차의 맛을 내고 우리 몸에는 건강 및 생태 기능 증진 효과를 발휘한다. 카테킨은 인체 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하여 노화 및 각종 암 예방효과를 발휘하고, 테아닌은 정신 안정, 카페인은 각성 효과를 낸다. 이러한 차의 주요 성분과 효능은 비로소 제다를 통해서 각각의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 차의 종류도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제다는 1.차의 강한 떫은 맛을 상쇄하고자 카테킨을 줄이는 제다 2.차의 건강증진 효과를 위해서 카테킨 성분을 보존하는 제다 3.차의 감칠맛과 정신 안정 효과를 기하기 위해서 테아닌을 보존하는 제다의 세 가지로 변화과정을 거쳐왔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제다 과정에서 카테킨과 테아닌의 양은 각각 산화 및 미생물 발효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티 폴리페놀 구성 성분인 카테킨은 티 폴리페놀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되어 다른 색소물질로 변화되면서 본래의 효능도 변질된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테아닌은 녹차류인 떡차나 잎차류를 오래 보관하는 과정에서 미생물 발효효소에 의해 발효, 분해되어 감쇄된다. 따라서 차의 어떤 성분에 의한 어떤 효능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제다법과 차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 다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심신수양

한편 차는 예로부터 다도(茶道)라는 각별한 문화현상을 동반해 왔다는 점이 다른 음료수가 따라올 수 없는 차의 차별성이자 뛰어난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전통 다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심신수양이다. 이런 다도의 기능에 부응하는 효능을 내는 차의 성분은 테아닌과 카페인이다.
각종 실험 및 연구보고에 따르면 테아닌은 뇌파를 일상적 대상의식인 베타파(Beta Wave)로부터 내면 명상의식인 알파파(Alpha Wave)로 안정시켜주는 효능을 발휘한다. 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테아닌의 이런 효능은 카페인의 각성 효과와 적절한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뇌파를 선현들이 다도로써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던 델타파(Delta Wave, 숙면상황에서 정신이 깨어있는 寂寂惺惺의 경지)로 유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한국적 제다와 한국차의 지향점은 명확해진다. 건강 및 생태 기능 증진 효과와 다도 수양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차, 즉 차의 카테킨과 테아닌 성분을 동시에 보전해내는 제다법과 전통적인 덖음 녹차를 주재료로 삼는 것이다.
카테킨은 티 폴리페놀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되면서 소실되므로 찻잎을 덖음으로써 티 폴리페놀 산화효소의 작용을 중지시켜 보전이 가능하며 테아닌은 보이차처럼 제다 과정에서 미생물발효에 의해 유실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덖음 녹차라는 기제를 통해 그 유지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다법, 차의 성분 및 효능과 관련하여 보이차의 경우를 녹차에 더 비교해 볼 필요가 있겠다. 녹차의 제다 및 성분과 효능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바와 같다. 보이차는 원래 녹차인 보이 생병(生餠)이 오랜 저장 기간을 통해 자연발효됨으로써 차의 카테킨 성분이 줄고 테아닌은 어느 정도 유지된 것이다.
그러나 요즘 유행되고 있는 보이 숙병(熟餠)은 1973년에 개발된 ‘인공쾌속 미생물발효법’에 의해 미생물효소(곰팡이균)에 의해 발효된 것인데, 이때 미생물발효의 원료가 되는 것이 테아닌이다. 따라서 보이 숙병엔 카테킨과 테아닌 성분이 모든 차류 중에서 가장 적다. 테아닌의 경우 보이 숙병 제다 과정에서 총량이 9.7mg/g에서 20% 이하인 1.6mg/g으로 감소한다. 흔히 보이차를 마시는 이유로써 “보이차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진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보이차는 제다 과정에서 생성되는 일부 알코올류의 작용으로 실제로 몸이 따뜻해지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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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덖음 녹차를 마심으로써 차 산업도 부흥

한국차가 녹차를 지향해야 함은 한국차의 품종과도 관련이 있다. 모든 나무는 남쪽 열대지방의 교목형 품종이 북쪽 온대로 이식되면 낮은 일조량 때문에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어 관목형이 되고, 잎도 대엽에서 소엽으로 변한다. 차나무도 마찬가지이고 차의 성분도 관목형은 티 폴리페놀과 카테킨 함량이 낮아지고 테아닌과 카페인의 함량이 높아진다. 열대지방의 잎이 큰 교목형은 카테킨이 과다하여 이를 누그려 트리기 위해 황차, 홍차, 흑차류(보이차) 제다에 적합하지만, 온대지방의 차나무 품종은 오히려 카테킨과 테아닌을 보전하기 위한 제다법과 차 종류를 지향해야 한다. 이처럼 차나무의 품종에 따른 차의 성분이나 차의 성분에 따른 차의 효능에 비추어 볼 때 한국차의 제다법과 차의 종류는 전통 덖음 녹차임이 명백해진다.
녹차는 한국의 전통차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단연 제다 및 음용에 있어서 1위이다. 중국에서는 녹차 제다량이 모든 차류 제다량의 67%를 차지하고 중국내 차 소비량의 70%가 녹차이다. 일본은 어떤가? 일부 도서지방의 기후 특성에 따른 예외적인 제다 및 차 종류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일본차 종류가 녹차이다. 그래서 이른 바 ‘그린티(green tea)’는 ‘일본 녹차’라는 고유명사로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이다.
‘제 땅에서 제철에 난 음식을 먹어야 체내의 기혈의 흐름이 순조롭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에 따라 한국인 역시 한국산 차나무 잎으로 한국 전통 제다법에 따라 만들어진 한국의 덖음 녹차를 마시는 게 건강에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아울러 심신수양에도 제격인 우리의 덖음 녹차를 마심으로써 우리의 차문화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내 차산업도 부흥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두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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