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믿음!”

오원교

오원교 원장
– 前시흥시한의사회장
– 한의협 첩약건강보험 추진 특별위원


기해년 새해를 맞이해 여전히 미해결된 과제로 표면화된 화두 중 하나는 한의사협회의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안에 맞서 양의사협회가 들고 나온 ‘의료일원화’이다. 상호 학문과 직능을 존중하는 ‘의료통합’이 아닌 일방적 흡수통합 안이기 때문에 한의사측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의도와 제안이 있는 점이 분명하다. 양의사들의 한의사에 대한 정치적이다 못해 맹목적인 한의학 폄하, 저주 섞인 발언들은 한의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해마다 달라지는 개원가의 녹록치 않은 여건 때문에 주변 동료 한의사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미래 한의사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회의, 탄식, 비관의 자조 섞인 목소리들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고 굳게 믿는다. 우리의 집단 희망의식은 실력을 만들어내고, 실력은 한의사가 번영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희망은 믿음에서 생기는데 희망적 믿음은 두 가지 원칙에서 시작한다.

원칙 1. 내가 지금 경험하는 현실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
원칙 2. 더 나빠지기 위해 일어나는 변화란 없다.

장기적인 경제불황 속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의학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 유사 한의의료상품의 범람, 급격한 최저시급 상승으로 인한 고용의 어려움, 급변하는 세무환경으로 혹자는 대기업 부장급 연봉보다도 더 못한 개원가의 순수익, 봉급 한의사에 대한 저평가된 처우에 무슨 희망이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개원가가 아무리 힘들어도 고려, 조선시대의 의원보다는 현재 우리의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낫지 않은가?

■한의사는 항상 발전해 왔다
사실 한의사란 직업은 항상 발전해 왔다. 최근 10여년간의 급격한 한의사의 환경 변화에 놀라지 말고 천천히, 주의깊게 관찰해 보자. 우주는 한의학계를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삶의 에너지는 항상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어려워진 개원가의 현실에도 80년대 혁신적인 탕전기 개발로 인한 한약 대중화, 침의 급여화로 중풍과 통증 관리가 정착되고, 90년대에는 비만(지방분해침·살 빼는 한약), 물리치료기기의 활성화로 한의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21세기 들어서는 한방소아과, 한방안이비인후과, 한방부인과, 한방피부과 등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마이너과가 득세했고 추나, 약침, 자동차보험, 실손보험 등의 히트상품이 출시되었다. 병원급에 한하지만 의료직능 상호 교차고용으로 한방병원, 요양병원이 한의사의 위상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의료체계의 관심사인 암, 재활 영역으로 한의사의 진출이 확대되고 있다.
2019년 3월부터는 추나요법이 보험항목으로 채택돼 개원가의 숨통을 틔어줄 전망이다. 또한 많은 진통은 예상되지만 첩약건강보험이 여러 각도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다. 아무리 개원가가 힘들다 하였지만 그때마다 우주는 한의사에게 변화를 요구했고 탈출구를 내주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양방의 영상의학과 의사 선호도 변화에 대한 주기를 살펴보자. 3년 전 영상의학과 전문의셨던 아버님이 80세의 일기로 소천하셨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아버님의 일생이셨지만 내게는 큰 선물을 남기고 떠나셨다. 그것은 바로 한의사에게도 미래가 있다는 믿음이었다.

■시대적 요구란 진통은 저주가 아닌 축복
아버님의 40여년간의 영상의학과의 승강부침의 변화 역사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시대적 요구란 진통의 적응과 준비는 저주가 아닌 축복임을 알 수 있었다. 60~70년대 아버님의 레지던트 시절, 방사선과(영상의학과로 개칭 전)는 지금의 성형외과, 안과처럼 학과 우수생이 갈 수 있는 과였다. 그래서 70~80년 아버님의 초기 10년 개원시절에는 매우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개원 10년 후부터 20년간은 다른 과들이 직접 방사선과 고유의 업무를 대신 해버렸기 때문에 방사선과만 단독 개원해서는 극심한 경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방사선과의 위상은 밑바닥을 쳤고 아버님은 그 때 ‘내가 왜 의대를 갔을까?’라고 후회하며 의사의 미래에 대한 회의적이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나에게 들려주곤 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의사가 꿈이었던 나는 고 3때 아버지에게 나의 학과 선택에 대해서 여쭤봤다. 90학번인 나에게 돌아오는 답은 “의사를 하지 말아라. 앞으로 의사는 밥 먹고 살기도 힘들다”였다. 그래서 나는 의예과를 택하지 않고 대안으로 당시 의예과보다도 점수가 높았던 학과인 한의예과를 선택했다. 선친이 20년간 겪으셨던 계속 추락하는 듯 보이는 개원 환경은 아버님의 심리를 급격히 위축시켜, 당시 경험하는 현실이 사실이라고 느끼실 수밖에 없게 했다. 그런데 지금 사실은 어떠한가? 아버님이 틀리셨다.
아버님이 당시 경험했던 방사선과의 추락은 사실이 아니고 단지 비상을 위한 우주 변화의 원리였던 것이다. 의사는 철밥통이었다. 결론적으로 “방사선과는 눈만 좋으면 늙어서도 할 수 있다”고 판단해 아버님이 인턴시절 선택한 그 길이 옳았다. 아버님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지만 흔들리지 않는 삶을 보여주겠노라고 평소처럼 똑같이 삶의 의지를 보이시며 돌아가시기 1주 전까지 병원 근무를 하셨다. 직원이 70여명이 되는 한 수술 전문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로서 대접을 받으시면서 페이닥터 생활을 하셨는데, 병원장은 “이렇게 저희 병원에서 근무해주시니 매우 고맙고 든든하다”하며 “우리의 아버님으로 끝까지 모실테니 우리와 함께 계속 있어달라”며 예우했다.
방사선과가 20여년동안 밑바닥을 칠 때 방사선과학회와 교수진들은 그들의 의권 강화를 위해 환골탈태하는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고난은 변장하고 찾아오는 축복임을 믿으면서 말이다. 21세기 들어 방사선과는 실손보험의 활성화, MRI와 CT 등과 같은 고가 영상장비의 활성화라는 시대적 물살을 탔다. ‘방사선과’에서 ‘영상의학과’로 개칭하면서 직능이 확대됐다. 영상의학전문의 건강보험 차등수가의 보장, 영상의학전문의 상근인력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제도적 권한 확대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급여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었다. 영상의학과의 끊임없는 노력과 변화하는 사회적 의료수요 덕택으로 지방에서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공급보다 수요가 모자라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한ㆍ양방 상생과 전통 한의학이 대접받는 시대
자 이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나는 시대적 목적은 한·양방 상생을 향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의료통합의 형태이든, 이원화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양의사들이 한의사를 대한민국 의료체제에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그런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한의사가 정형외과, 내과 전문의처럼 필요한 인력으로 대접받는 그런 날이 올 것인가? 답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에 있다. 가장 한의학적이면서도 양방 치료기술 이론을 이해하고 임상에 접목하는 자세 말이다.
시대는 양의사와 환자 의뢰 및 의학적 언어소통에 익숙한 ‘新 한의사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氣’의 존재가 양자물리학, 유전학, 생명공학, 신경과학, 전기생리학에 의해 과학적으로 규명되고, 세계 주류의학계가 동양의학인 한의학과 중의학에 대한 재해석이 되면서 관심이 더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자적인 국가면허가 부여돼 보호받고 발전했던 대한민국의 한의사에게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국내의 의사들은 해외 의료관계자들의 관심 앞에 한의학에 대해 다시 재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침 효과를 플라시보라고 폄하하는 논문이 보고되고 있음에도 미국, 유럽, 호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앞서가는 의사, 과학자들은 여전히 한의학의 과학성을 재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제 미래에는 가장 한의학적인 한의사가 대접을 받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한의사들이 변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무엇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신호다. 양의사가 한의사를 폄하한다면 분노할 일이 아니라 ‘한의사에게 더 큰 번영을 안겨주기 위해 양의사들이 도와주고 있구나’하고 기뻐할 일이다. 밀치고 저항하면 상황은 계속된다. 격렬한 저항은 상대에게 더욱 강한 힘을 준다.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에서 벗어나게 되고 실제 사실을 볼 수 있게 된다. 마침내 꽉 막혀있는 답답한 현실이 열린다. 이것은 대응하거나 노력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를 선택하라는 의미이다. 적대적 대항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사회악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적하되, 마음 한편에서는 비굴이 아닌 수용의 자세로 수모를 최대한 견디고 즐거워하며 때를 기다린다. 우주는 한의사의 재도약을 위해 한의사의 수모를 요구하고 있다. 완전히 가라앉고 바람이 빠졌을 때, 새로운 공기는 다시 채워지고 수면 위로 재도약한다. 우리 한의사에게 익숙한 단어인 ‘음극양생(陰極陽生)’, 힘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감사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한의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그것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여야만 모든 것이 좋게 귀결된다. 시절과 협회에 대해 분노할 필요도, 원망할 필요도 없다. 두려워할 필요도, 의심할 필요는 더욱 없다. 양의사들의 분노와 적개심이 더해질수록 우리는 하하 웃으며 ‘이제 한의사가 비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만’하고 서로 격려하고 미래를 준비하면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보탤 일은 우리의 번영을 도와주는 양의사에 대해 감사해 본다. 감사는 영혼의 안식처요, 한의사의 밝은 미래의 보증수표다. 부정적 감정과 태도는 불행과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 한의사를 까닭 없이 모함하고 폄하하는 양의사들에 대한 감사는 무언가를 바랄 때마다 정반대가 먼저 나타나는 ‘머피의 법칙’에 종지부를 찍고 한의사가 바라는 대로 되는 선순환의 열쇠요, 창조의 관문이다. 종교인들이나 하는 착한 척하자는 말이 아니다. 판단을 판단으로 맞서지 않고 감사로 대처한다면 부드러움이 영혼을 감싸고 지혜가 마음을 채울 것이다. 실상이 선명하게 분별되고 마침내는 정확히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선물과도 같은 양의사의 한의사 폄하라는 변화의 흐름에 서 있다.
이제 우주의 순리에 맞추어 각자의 영역에서 유연하고 여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갖고 있다. 현대의료기기의 한의학적 용어 사용과 과학적 근거는 더욱 확고해지고 SCI급 논문도 계속 나온다. 대학은 점점 더 실력을 갖추고, 임상가는 점점 표준화된 기준으로 실력과 학술을 교류한다. 창조적인 힘은 현대의료기기 뿐만 아니라 의사들이 사용하는 양약, 주사제, 수술, 기타 의료기술에 이르기까지 한의학에 근거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양의사들이 침을 IMS라고 학문적 주장을 한 것처럼 우수한 교수님들과 연구원, 학회, 재야 임상가, 협회가 학문적 성과와 정치력을 발휘하여 공동으로 이제 그 일을 해 낼 것이다.
43대 한의사협회 집행부가 1년 남짓 지나고 있다. 필자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43대 집행부를 수용하고 믿어 줬으면 한다. 필요하다면 아닌 것, 못한 것에 대해서는 건설적 비판을 아끼지 않아야겠지만, 어떤 집행부의 정책이든 한의사의 번영을 위한 최고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선대 집행부가 천신만고 끝에 이뤄놓은 결과물들이 끝내는 빛을 발할 것이라는 우리 2만5천 한의사들의 믿음의 저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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