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⑥

장미수(薔薇水)와 국산 화장품의 성가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의방유취』, 『동의보감』 등 향료 제조법 기록
香飛露는 손과 얼굴을 씻으면 기름때 벗겨내
향유고래 분비물 ‘용연향’은 매우 귀한 향료

C2192-38

오래 전부터 계속해오던 『의방유취』 강독회에서 미처 눈길이 미치지 못했던 제향문(諸香門)을 혼자서 뒤적이다가 재미난 대목을 발견했다. 여말선초 한반도에 무역되어 들어왔던 서역(西域)의 산물이 의방서에 기록되어 있으리라고 미처 예상치 못했던 탓이었다. 해서 나중에라도 잊지 않기 위해 비망기에 몇 자 적어 남겨두었던 것이 이 글의 밑거름이다.

이제야 다시 들춰보자니 새삼스럽기도 하거니와 한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 귀국선물로 외제화장품을 구해 오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졌는데, 이제는 거꾸로 외국여행객들이 시내의 면세점이나 명동이나 남대문 일대의 국산화장품 가게를 싹쓸이하다 시피 한국 화장품의 품질과 인기가 호평을 받고 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에겐 아주 오래된 화장의 역사와 전통이 있다. 우선 누구나 알고 있듯이 신라의 화랑도(花郞徒)를 통해 이미 삼국시대에 화장술이 남성에게 까지 두루 유행하였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으며, 왕실이나 사대부 양반가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부녀자들이 자연화장을 즐겼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장(化粧) 혹은 향장(香粧)이라 부르는 미적 분식(粉飾)행위는 기실 의약적인 효용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역대로 화장품 처방이 의방서에 수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의방유취』의 제향문이나 『동의보감』 잡병편 제법문에 향보(香譜)를 비롯한 각종 향료 제조법이 별도로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비누(향비조(香肥皂)) 만드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는데, 세수할 때, 이것을 사용하여 손과 얼굴을 씻으면 기름때를 벗겨낼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의 속명(俗名)을 향비로(香飛露)라고 한다고 했으니 비누 거품이 이슬방울처럼 날리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의방유취』 제향문의 향보에는 ‘경진용연향병자(經進龍涎香餠子)’라는 향제조법이 기재되어 있다. 간략히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침향 10냥, 매화 2냥, 치자꽃 2냥, 사향 반돈, 용연 반냥. 침향은 가늘게 썰어 아주 곱게 갈아서 장미수에 담가 하룻밤을 묵혀 쓴다. 다음날 다시 3~5차례 갈고 별도로 돌에 2차례 간다. 용연을 비롯한 4가지 재료는 아주 곱게 갈아서 침향과 서로 고루 섞은 다음 다시 돌연 위에서 다시 한차례 갈되 만일 물기가 너무 많거든 종이를 써서 물기를 적당히 닦아내준다.

용연향은 향유고래의 분비물로 일종의 담즙과 같은 대사산물을 해면으로 부상했을 때 뿜어내는데, 이것을 아주 운 좋게 만나 어부들이 해상에서 뜰채로 걷어내어 채집하는 매우 귀한 향료라고 한다. 평상적으로 사용하는 약재는 아니나 아주 극소량만 가지고도 엄청난 분량의 향수를 제조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발향작용을 나타내는 재료이다.
외국에서나 알려진 용연향이 이 향보에 올라있는 것도 신기하거니와 제조법 중간에 드러난 장미수는 더욱 생소하기만 하다. 우리에게도 토종 장미 품종이 있었지만 장미수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장미수에 대해서 특별히 주석을 달아 설명해 놓았다.

“장미수는 요즘 외국상인들이 파는 것으로 바로 남번국의 무역선에서 주석병에 담아 놓은 대석수이다.(薔薇水: 今番客所賣者, 乃南番舶船上, 錫甁內盛之, 大錫水也.)”

이글은 『거가필용사류전집』을 인용한 것이니 원나라 때 이미 무역선을 통해 장미수가 주석병에 담겨 팔리었으며, 오래 전부터 중동이나 유럽의 장미수가 중국에 유통되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중세 서양의 수도사들이 제조하여 팔았다는 장미수를 수백 년 전통을 지닌 약방(아포테커리)에서 처방한 것을 원조로 다시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아마 고려나 조선에서 외국산 장미수를 사용한 이 향료를 상용하기에는 어려웠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500~600년 전이었을 것이고 궁중이나 사찰에서는 아마도 비슷한 향료를 만들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역사에 오랜 전통과 역사성이 깃든 향수 처방이 우리 의서에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의신문(www.akom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