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 ⑦

22-1한상윤 한의사/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

A.I. 시대의 한의학 교육


몇 해 전, 의대 교수들의 Consensus Workshop 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진행 방식이나 내용이 흥미로워 기억에 남았는데, 방식은 다음과 같다. 특정 주제에 관한 질문이 주어지면, 일정 시간동안 각자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질문의 답에 해당될 만한 아이디어를 낸다. 2인 1조로 조를 나눠 각자 자신의 브레인스토밍 결과를 설명한다. 이후엔 큰 글씨로 카드 한 장에 하나의 아이디어를 적는다. 아이디어 카드를 카테고리 별로 묶고 덩어리가 큰 것부터 이름을 붙여 본다.

이것은 다양한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분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핵심 가치와 중요도까지 파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견을 취합하여 합의를 이루기에 상당히 유용한 방법이었다. 그 워크숍이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미래 AI Doctor 시대에 Human Doctor에게 필요한 역량은?”이라는 질문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게 된다는 언론 매체의 중립적이면서도 우려 섞인 예상을 종종 접한 까닭에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말은 꽤 익숙하여 흥미로울 것은 아니었지만, 과연 의대 교수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굉장히 궁금하였다.

당시 적힌 카드의 아이디어들은 [공감능력/ AI Doctor 조정능력/ 신뢰감 심어주기/ 환자 경제적 능력 배려/ IT기술 등 새로운 영역 습득/ 경청하는 자세/ 삶의 질에 초점/ 돌발상황 대처능력/ 여러 분과를 아우르는 통합적 의료/ 따뜻한 소통/ AI 오류 지적/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능력/ 환자 가족에 대한 이해/ 수술경험의 축적 및 전파/ 보다 정확한 술기능력/ 비합리적 결정의 배경을 이해/ 돈에 대한 초월/ 미래질병패턴의 이해/ 비언어적 의사소통 잘하기] 등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아이디어를 카테고리 별로 묶고 요약하여 결국 “소통/ 인간미/ 경험 축적”으로 제시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크숍에 참가한 의대 교수들은 미래 AI Doctor 시대에서 Human Doctor에게 필요한 역량에 대해 소통과 인간미, 경험 축적이라고 합의한 것이다. 결과를 지켜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카드에 적힌 아이디어들은 한의사들이 지금 이 순간까지 해 왔던 것이며, 동시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에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표한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 직무 대체 확률 순위’를 보면, 일반의사, 약사, 치과의사, 전문의사 순으로 대체 확률이 낮았다. 한의사는 대체 순위 358위, 대체 불가능 순위 49위로 의료관련 직종에서 가장 대체 확률이 낮은 직종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다른 학문 분야와 직업군 사이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한의학과 한의사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강점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미래 사회에서도 한의학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의학 교육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서양 의학에서는 의사의 역할 중 앞으로 사라질 역할과 유지될 역할, 혹은 새롭게 생겨날 역할을 나누어 교육과정과 수련과정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각종 데이터와 근거를 바탕으로 진단하고 판독하는 역할은 현재에도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대체속도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치료법의 선택과 같은 최종 의사 결정은 여전히 의료인의 몫으로 남을 것이며 의료 윤리와 환자와의 의사 소통, 공감 능력 등이 의료에서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단순 암기 능력을 평가하는 교육 방식 보다는 의료인으로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선택하도록 하는 교육, 의료 윤리 강화, 환자와의 의사소통 능력 개발 등의 교육을 더욱 강조해야 할 것이다. 한의학 교육 역시 앞으로 이러한 방향으로 커리큘럼 개편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질병 중심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한의학의 관점으로 인해 한의학은 인간중심의학(Person Centered Medicine)적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는 인공지능 시대의 의료 역량에 있어서 서양의학에 비해 조금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의 의료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강점을 잘 살림과 동시에 인공지능을 실제 한의 진료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기준을 세우고 교육하고 평가해야 한다. 의료에서의 인공지능 활용을 서양의학의 전유물로 여긴다거나 인공지능의 발달을 한의계가 구경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공지능의 활용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들을 가정하여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의견과 의료인의 의견이 충돌할 경우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인공지능의 치료법에 문제가 있을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와 같은 문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을 활용한 한의진단 전문가시스템 개발 연구가 시작되어 진행 중이며 빅 데이터를 활용하여 한의학과 정보통신기술의 융합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다. 또한 한의학연구원에서는 동의보감이나 향약집성방과 같은 고전 문헌들과 정량화된 임상 한의학 지표들을 딥 러닝으로 학습한 ‘AI 한의사’를 내년부터 개발할 계획이라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한의계의 노력들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의료 형태가 변화하는 것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객관적 한의 진단과 표준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가 크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과 함께 그것을 한의 진료와 치료에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하며 효율적으로 교육한다면, 한의학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강점을 충분히 발휘하여 효과적인 진단과 치료로 진정한 맞춤 의료를 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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