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 내리던 도쿄

최승훈 최승훈
한약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학교 교수


“IST를 거쳐 전통의학이 ICD-11에 편입되면서 세계 의학은 바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Nature’는 1869년 영국에서 창간된 이래 전 세계 과학 분야에서의 중요한 진전과 성과를 소개하고 있는 최고 학술지이다. ‘Science’와 더불어 impact factor(IF)가 무려 40에 이른다. 1953년에는 James Watson과 Francis Crick의 DNA 구조에 관한 ‘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가 실리기도 했었다.
9월 27일 자 Nature 홈페이지 메인에 필자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글이 실렸다<사진 참조>. 내년 5월 세계보건총회 (World Health Assembly)에서 ICD-11이 통과될 예정이고, 무엇보다도 그 26章(Chapter 26)에 전통의학이 자리잡게 되는데, 그 프로젝트를 필자가 처음 기획하고 진행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로부터 인정받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보람이자 기쁨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필자의 비전은 일관되게 한의학의 세계화였고, 이제 그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8월 중순부터 한 달여 Nature의 아태지역 담당자와 인터뷰를 했었다.
WHO에 근무하면서 2004년에 시작했던 ‘WHO International Standard Terminologies on Traditional Medicine in the Western Pacific Region (IST)’ 작업이 15년만에 ICD-11로 열매를 맺는다. IST에서 ICD-11에 이르는 과정은 길고도 험했다. 시작하면서 전통의학 표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고, 또 그 과정에서 중국, 일본, 한국 등 주요 참가국의 기대와 요구를 수용 조화시키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많은 고비가 함께했던 WHO의 전통의학 표준화 과정
WHO에서의 전통의학 표준화 과정에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최대의 위기는 2006년 6월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IST를 근간으로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Traditional Medicine (ICTM)을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ICD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기대로 열렸던 서울 회의 무렵이다. 이미 세 차례의 WHO 회의 결과로 만든 IST 초안을 영어권 전문가들이 3차례에 걸쳐 리뷰를 거의 마칠 무렵이었다. 당시 서울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게이오대학의 와타나베 겐지 교수가 일본의 Japan Liaison of Oriental Medicine (JLOM)에서 IST를 거부하기로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당시 IST작업에 일본 대표로 참가했던 쇼화의대의 도리이츠까 가쓰오 교수는 그 책임을 물어 일본 동양의학회에서 제명당했으며, 앞으로 일본은 IST를 포함한 WHO의 표준화 작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2003년 WHO에서 필자가 처음으로 전통의학 표준화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일본은 중국으로부터의 영향에 대한 우려를 줄곧 해왔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는 WHO의 전통의학 표준화 작업에 대응하고 협력하기 위해 일본 국내에서 전통의학에 관련된 5개 학회가 연대하는 JLOM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대체로 WHO 회의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젊고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영어가 가능하다. 반면에 영어가 가능하지 않아 WHO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사들은 대개 보수적 폐쇄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당시 JLOM 내의 이시가와 도모아키 박사를 중심으로 원로 보수 진영에서 진보적 성향의 전문가들에 대해 대대적인 비판과 함께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우여곡절 끝 WHO 전통의학 표준화 작업에 일본 동참
WHO 전통의학 표준화를 주관했던 필자로서는 충격과 당혹감에 한동안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서태평양지역에서 가장 많은 분담금을 지원하는 일본이 뒤로 나자빠지면 지난 3년간 WHO에서 일했던 모든 작업이 물거품 된다. 게다가 당시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장도 일본 출신이었다. 와타나베 교수를 통해 조만간 도쿄의 동양의학회를 방문하고 사태를 주도한 동양의학회 임원들과 만나자고 제안했다.
2006년 8월 8일 도쿄에 도착해 역 근처 동양의학회 사무실에 4시 30분경 도착했다. 평소보다 무거운 분위기가 입구에서부터 전해진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동양의학회 이시노 쇼고 회장을 위시해서 16명의 인사가 포진하고 있었다. 또 영어-일어 전문통역사도 배석했다. 영어가 안되는 보수 진영에서 직접 일어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자 함이었다.
또 테이블 위에는 필자가 지난 3년 동안 WHO에서 했던 작업을 분석한 자료가 쌓여있었다. 필자도 제대로 다 정리 분석하지 못했던 자료들이다. 그리고 벽에 걸린 모니터에는 그 자료가 비쳐지고 있었다. 내심 놀랍고 당황스럽다. 바로 16:1 담판이 시작되었고, 회의는 중간에 도시락으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무려 11시 반까지 계속됐다. 마치 적진에서 일본을 상대로 홀로 독립운동을 하는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보수 원로들이 장황하고도 신랄하게 쏟아놓는 비판을 통역사의 난감한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대로 조용히 다 듣고 나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좋다. 당신들이 그동안 함께 노력해서 만든 WHO IST를 거부한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당신들이 지금 이렇게 거부하면 마치 고양이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꼴이 될 것이다. 지금 중국측에서 독자적으로 국제 전통의학 표준용어를 만들고 있는데, 지금 내가 계속해서 그들을 견제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들의 작업이 중단되면 결국 그들이 만든 표준안만 남게 된다. 그런 상황을 당신들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제 당신들의 현명한 판단만이 남았다”라고 했다.

그러자 잠시 그들끼리 숙의 시간을 거친 다음, “알았다. 당신의 의견을 수용하겠으니 3개월 더 검토할 기한을 달라”고 요청해왔다. 최대 위기를 넘어가고 있는 순간이다.

일본은 참여 후 마무리 단계까지 깔끔하고 성실히 협조
열두 시가 다 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그날 밤 도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호텔 방에 누워 귓가에 울리는 창밖 빗소리는 속삭이듯 다정하게 들렸다. 불면의 밤을 넘어 도쿄의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편히 잠 잘 수 있었다.
이듬해 WHO에서 IST가 출간되자 JLOM은 도쿄에서 기자발표회와 출판기념회를 성대하게 베풀어 주었다. 일본측은 대부분의 표준화 작업에서 처음에는 다소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지만 일단 시작해서 진행되면 마무리 단계까지 깔끔하고도 성실하게 협조해주었다. 그렇게 중대 고비를 넘긴 IST는 ICTM으로 진화되면서 내년 ICD-11의 26장에 실리게 된다.
현재 26장에 실릴 것으로 알려진 증(證)이 실제 임상을 충분히 받쳐주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앞으로도 적지 않은 수정과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전통의학이 세계 주류의학의 트랙에 올랐고, 그렇게 전 인류의 건강을 위해 이바지할 것이다.
Nature 담당자가 마지막 메일에서 필자의 “It will definitely change the medicine around the world”라는 문장에서 medicine 앞의 the를 빼도 좋겠냐고 물어왔다. 영어 정관사 문제는 언제나 간단치 않다. “Sure.” 그는 그 문장으로 중간 헤드라인을 잡았다. IST를 거쳐 전통의학이 ICD-11에 편입되면서 세계 의학은 바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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