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집과 자만에 빠져 살의(殺醫)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정재균

[한의신문=정재균 인턴기자]세조(재위 1455~1468)는 조선의 제7대 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나 재위 중의 독단적인 통치 방식 때문에 비판받기도 하나, 국정 운영에 있어서는 다재다능하면서도 합리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의학 분야에도 조예가 깊어 관련 연구에서는 역대 왕 중 의약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언급할 정도였는데, 이런 세조의 면모가 잘 드러난 일화 중 하나가 바로 <의약론>을 지어 인쇄, 반포하게 한 것이었다.
1463년(세조 9년)에 지어진 이 책에서 세조는 의사를 심의(心醫), 식의(食醫), 약의(藥醫), 혼의(昏醫), 광의(狂醫), 망의(妄醫), 사의(詐醫), 살의(殺醫)의 8가지 부류로 나눈다.

이 중에서 심의(心醫)라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도록 가르쳐서 병자(病者)가 그 마음을 움직이지 말게 하여 위태할 때에도 진실로 큰 해(害)가 없게 하고, 반드시 그 원하는 것을 곡진히 따르는 자이다.
약의(藥醫)라는 것은 다만 약방문(藥方文)을 따라 약을 쓸 줄만 알고, 비록 위급하고 곤란한 때에 이르러서도 복약(服藥)을 권하시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자이다.

특히 살의(殺醫)를 일컬어 ‘가장 해로운 의사’라고 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살의(殺醫)라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을 그르다고 여기어 능멸하고 거만하게 구는 무리이다. 최하의 쓸모없는 사람이니, 마땅히 자기 한 몸은 죽을지언정 다른 사람은 죽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의료윤리의 측면에서 현대의 의료인들도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학창 시절에 내신, 수능, 논술 등의 각종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의과대학, 한의과대학 등에 입학한 후 6년 동안 실로 엄청난 양의 학업부담을 이겨내고 국시까지 통과해야 비로소 ‘의료인’이 될 수 있다. 말 그대로 아무나 의료인이 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의료인이 된 사람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윤리는 단순히 똑똑한 것과는 다른 문제다. 의료인은 동료와 환자를 존중해야 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며 아는 것은 안다고 하는 참된 앎을 실천해야 한다. 다른 의료인의 전문 분야를 존중하고 잘 모르는 분야라면 함부로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최근의 세태를 보면 그 상식이 항상 지켜지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집과 자만에 빠져 살의(殺醫)가 되는 일이 없도록 550여 년 전 선조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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